삼성SDI의 ESS·LFP 피벗 — 삼원계 회사가 인산철에 발을 들이다
전기차 둔화 속 삼성SDI가 ESS와 LFP로 방향을 트는 2025~2026년 국면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나
삼성SDI는 배터리를 각진 금속 캔에 담는 각형 방식으로, 니켈을 많이 쓰는 삼원계(NCA·NCM, 니켈·코발트 등을 섞어 에너지 밀도를 높인 배터리)를 주력으로 삼아 온 회사다. 그런 회사가 2025년 말부터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즉 ESS(전력을 저장했다 쓰는 에너지저장장치)와 LFP(리튬인산철, 니켈·코발트 없이 값이 싸지만 에너지 밀도가 낮은 배터리) 쪽으로 눈에 띄게 무게를 옮기고 있다.
두 건이 그 방향을 보여 준다. 먼저 2025년 12월 10일, 삼성SDI는 미국의 한 에너지 인프라 업체와 총 2조원을 넘는 ESS용 LFP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고객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고, 2027년부터 약 3년간 공급하며, 이 물량은 스텔란티스와 함께 운영하는 미국 각형 배터리 공장(스타플러스 에너지)의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바꿔 생산할 계획이라고 했다(삼성SDI 뉴스룸). 이 공장은 앞서 다룬 GM 합작공장(뉴칼라일)과는 다른, 스텔란티스 쪽 공장이다.
이어 2026년 3월 24일에는 국내 양극재 업체 엘앤에프와 약 1조 6천억원 규모의 ESS용 LFP 양극재(배터리의 용량과 성격을 좌우하는 4대 소재 중 하나) 공급계약을 맺었다. 2027년부터 3년간 공급받고 이후 3년의 우선공급 옵션도 걸었다. 회사는 미국의 원산지 규제 강화로 ’공급망의 탈중국화’가 이슈가 된 상황에서 국내 소재를 선제적으로 확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그런가 / 무슨 뜻인가
삼원계 회사가 LFP에, 전기차 회사가 ESS에 발을 들이는 것은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정해져 있지 않다. 두 방향으로 읽을 수 있다.
한쪽은 남는 자리를 새 수요로 채운다는 쪽이다.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더디게 늘면서 배터리 라인에 여유가 생겼는데, 마침 ESS 시장은 신재생 발전과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로 빠르게 커지고 있다. 그 ESS 시장에서는 값싸고 안전한 LFP가 사실상 표준에 가깝다. 삼원계만 고집하면 이 시장을 통째로 놓치는 셈이라, LFP 채택은 ESS에 들어가기 위한 입장권에 가깝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산 소재에 원산지 규제를 걸면서, 국내 양극재(엘앤에프)로 공급망을 짜 둔 것이 경쟁사 대비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다른 한쪽은 후발주자의 원가 부담이다. LFP는 원래 중국 업체들이 원가로 압도해 온 영역이고, 삼원계 중심이던 삼성SDI는 LFP의 원가 경쟁력과 양산 레퍼런스 모두에서 뒤에서 출발한다. 미국에서 생산하고 국내 소재를 쓰는 방식은 공급망의 안정성은 얻지만, 중국산보다 원가는 높을 수 있다. 이 경제성을 메워 주는 것이 미국의 원산지 규제와 세액공제(AMPC) 같은 정책인데, 정책이 바뀌면 ’탈중국 프리미엄’이 곧바로 ’고비용 부담’으로 뒤집힐 수 있다.
무엇을 봐야 하나
첫째는 라인 전환의 규모와 속도다. 회사는 스텔란티스와 공동 운영하는 미국 각형 공장의 ’일부 라인’을 ESS용으로 바꾼다고 했을 뿐, 몇 GWh를 언제까지 돌리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전환 규모가 어디까지 커지는지가 이 피벗의 실체를 가른다.
둘째는 계약의 매출 실현이다. 미국 ESS 공급(2조원 초과)과 엘앤에프 양극재(1.6조원) 모두 2027년부터로 예정돼 있다. 발표된 계약 규모가 실제 매출로 잡히기 시작하는 시점과, 미공개인 ESS 고객사의 정체·추가 계약 여부가 확인 지점이다.
셋째는 정책과 원가다. 이 피벗의 경제성은 미국의 원산지 규제·관세·AMPC가 떠받치고 있다. 이 정책들이 강화되면 국내 소재를 확보한 삼성SDI의 자리가 넓어지고, 완화·폐지되면 중국산 대비 원가 열위가 그대로 드러난다. 어느 쪽으로 가는지가 탈중국 전략의 손익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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