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운, 배를 빌려주는 쪽으로 — 잇단 장기대선 계약
2025~2026년 벌크선·자동차선을 잇달아 장기대선으로 내보내는 계약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나
대한해운은 벌크선·LNG선·탱커선으로 남의 화물을 실어 나르는 해운사다(회사 전체 구조는 상설 해설을 참조). 그런데 2025년 하반기부터 회사가 잇달아 내놓은 계약은 화물을 나르는 계약이 아니라, 배 자체를 일정 기간 남에게 통째로 빌려주고 정해진 용선료를 받는 ‘장기대선’ 계약이었다. 대선(貸船, charter-out)은 회사가 직접 배를 운항하는 대신 선주로서 배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시황이 오르내려도 계약 기간에는 용선료가 정해진 값으로 들어온다.
공시된 계약을 시간순으로 보면 이렇다. 2025년 10월 17일, 벌크선 1척을 경쟁 벌크선사인 에이치라인해운에 6062개월(용선주 옵션) 장기대선하는 계약을 맺었다. 계약기간 전체의 추정 매출은 약 665억원으로, 2024년 연결 매출의 3.81%에 해당한다. 이어 2026년 8월 31일에는 자동차운반선(PCTC) 1척을 현대글로비스에 5년 4개월(2026년 11월2032년 3월) 대선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추정 매출 약 729억원, 매출 대비 5.71%다. 2026년 9월 10일에는 다시 벌크선 1척을 중국 ZHEJIANG SHIPPING에 33.5~38.5개월 대선하는 약 421억원 규모 계약이 공시됐다.
두 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이들 계약금액이 한 해치가 아니라 계약기간(3년~5년여) 전체를 합산한 추정치라는 점이다. 그래서 매출 대비 몇 퍼센트라는 숫자는 실제보다 작아 보이며, 연 단위로 나누면 그만큼 줄어든다. 다른 하나는 현대글로비스 건의 성격이다. 회사는 이 계약에 투입할 중고 자동차운반선(PCTC)을 취득하는 중이라고 공시에 적었고, 이 계약은 금융리스로 회계처리된다고 밝혔다. 즉 이미 보유한 배를 빌려주는 것을 넘어, 대선에 쓸 배를 새로 사들이는 데까지 나아간 계약이다. 자동차선 대선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 회사는 2023년 12월에도 현대글로비스와 PCTC 1척의 대선연장계약(35개월, 약 480억원)을 맺은 바 있어, 이번 계약은 그 관계를 한 척 더 늘린 셈이다.
이것이 새삼스러운 일인가
대선이 대한해운에 갑자기 생긴 사업은 아니다. 2026년 반기보고서를 보면, 배를 운항해 버는 항행수익과 배를 빌려줘 버는 대선수익이 나란히 잡히는데, 반기 기준 대선수익이 전체 매출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이미 회사 수입의 상당 부분이 ’운항’이 아니라 ’임대’에서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LNG선을 글로벌 에너지 기업에 장기로 빌려주는 계약도 같은 대선의 한 형태다.
그래서 2025~2026년의 잇단 대선 계약은 없던 방향을 새로 튼 것이라기보다, 이미 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대선의 무게를 벌크선과 자동차선으로 넓혀 가는 흐름으로 읽을 수 있다. 회사가 배를 직접 굴려 화물을 나르는 운항사업과, 배를 빌려주고 용선료를 받는 임대사업 사이에서 후자의 비중을 늘려 가고 있는 국면이다.
두 갈래로 읽힌다
대선을 늘리는 선택은 방향이 정해진 호재도 악재도 아니다. 어느 쪽으로 작동하는지는 조건에 따라 갈린다.
한쪽 갈래는 안정성이다. 해운 운임은 세계 경기와 선복 수급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데, 장기대선은 계약 기간 동안 용선료를 고정한다. 시황이 내려가는 국면에서는 이 고정 수입이 실적의 바닥을 받쳐 준다. 상대가 현대글로비스·에이치라인처럼 이행 능력이 있는 곳이고 계약이 5년 안팎으로 길다면, 그만큼 앞으로의 수익 가시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읽힌다.
다른 쪽 갈래는 포기하는 것의 크기다. 배를 고정 용선료로 빌려주면, 시황이 크게 오르는 국면에서 직접 운항으로 벌 수 있었던 초과 수익은 상대(용선주)의 몫이 된다. 대선은 하방을 막는 대신 상방도 함께 내주는 거래다. 여기에 현대글로비스 건처럼 대선을 위해 중고선을 새로 사들이는 경우, 그 취득은 금융리스로 자산과 부채를 함께 늘린다. 이때는 받는 용선료가 선박 취득에 든 비용과 그에 딸린 금융비용을 얼마나 웃도는지가 실제 남는 장사인지를 가른다.
즉 같은 ’장기대선 확대’라도, 시황이 내려가는 국면에서는 안정판으로, 올라가는 국면에서는 놓친 기회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신규 취득이 낀 계약은 용선료와 선가·금융비용의 차이가 얼마냐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무엇을 봐야 하나
어느 갈래로 기우는지는 몇 가지 숫자를 따라가면 드러난다. 첫째, 대선수익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추이다. 지금은 반기 기준 3분의 1인데, 이 비중이 계속 올라간다면 회사의 성격이 운항사에서 선박 임대사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신호다. 둘째, 새로 취득한 선박에 딸린 금융리스 부채와 그 배가 받는 용선료의 관계다. 반기·사업보고서의 리스부채와 부문별 손익에서, 늘어난 자산이 그만큼의 수익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셋째, 운임 시황이 오르는 국면에서 회사가 직접 운항으로 참여하는 몫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다. 대선으로 묶인 배가 많을수록 시황 상승의 수혜는 줄고, 적을수록 남는다.
자동차운반선 대선을 취득까지 동반하며 늘려 가는 흐름이 이어지는지도 관찰점이다. 2023년 연장계약에 이어 2026년 취득·대선이 더해진 만큼, 뒤따르는 PCTC 취득·대선 공시가 계속 나오는지를 보면 이 축을 키우는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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